마이산 청소년 야영장

야영장안내

마이산

태극의 중심지 마이산

마이산은 백두대간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암마이봉 673m, 숫마이봉 667m)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했고, 조선시대부터 속금산이라 불리다 마이산으로 다시 고쳐져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 왔습니다.
북쪽 비탈면에서는 금강수계가 남쪽 비탈면에서는 섬진강의 수계가 시작되며 山태극과 水태극의 중심지로서 태극의 기운이 왕성한 명산입니다.

마이산은 중생대 후기 약 1억년전까지 담수호였으며 대 홍수 시 모래자갈 등이 밀려 호수를 메우고 물의 압력에 의하여 형성된 수성암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약 6~7천년전 지각 변동으로 융기 되어 마이산을 이루었으며 지금도 민물고기 화석을 간혹 발견할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고려말 공민왕의 왕사인 나옹懶翁스님께서 마이산 고금당 즉 나옹굴에서 도를 통하며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라는 오도송을 읊었습니다.
나옹스님의 제자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데리고 나옹굴에 찾아오자 나옹스님이 삼한강토三韓疆土를 재어서 다스리라는 증표로 금척金尺을 이성계에게 하사하였습니다.

삼남최초로 의병창의한 호국의 도장 마이산

전봉준 장군의 장녀가 피신해 오자 당시 금당사 주지인 김대완金大完스님은 10년동안 귀머거리 벙어리 행세하라며 숨겨 주어 화를 모면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당시 주지였던 김대완 스님은 면암 최익현선생과 함께 동명록同盟錄을 판각하여 순천.곡성등에 200여부를 배포하여 호국의 의지를 불살랐습니다.
1907년 9월 12일 정재 이석용靜齋 李錫庸先生이 마이산에서 호남의 열혈남아 1,000여명을 모아 삼남최초로 의병창의義兵倡義하였고 이석용 장군의 비장한 출사표出師表는 우리 후손들이 배워야할 호국의 정신입니다.

마이산청소년 야영장은 우리 청소년들이 마이산의 신령스런 태극의 기운과 호국의 기운을 이어받아 7천만 내외 한민족의 품안에서 의기를 바로세우는 성지로 발돋움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